아버지의 시계

요즘 취미생활로 시계를 배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매 주 기계식 시계의 심장,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하는 ‘무브먼트’를 전부 뜯어내고 조립해 보고 있는 중이죠.

타임랩(홍성시계)에서 진행하는 4주간의 시계 교육 강좌(기본과정)를 수강한지 3주가 지났고, 이제 마지막 주 교육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이 지나면 수료증과 함께, 교육 기간 동안 직접 만든 시계가 제 손에 들어올 예정인데요. 잠 더럽게 안 오는 화요일 밤에, 문득 어쩌다 이렇게 시계라는 취미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가을이라도 타나…

뜯는 남자의 뜯는 하루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도 한창 고등학교 다니면서 바보짓하던 때일 겁니다. 저희 부자의 출근과 등교 시간은 모두 아침 7시로 정확히 겹쳐서, 종종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곤 했는데요.

방학을 앞둔 어느 추운 겨울 날, 갑작스레 아버지 손에 처음 보는 시계가 올려져 있어 유심히 살펴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검푸른 광택이 감도는 전면 유리, 쇳덩이를 조각해 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수려한 실루엣을 가진 시계 외형,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초침을 처음 본 순간 저는 거의 맛이 갔던 것 같아요.

뭔가 범접할 수 없이 신비로운, 마치 어른의 상징과도 같은 어떤 것을 동경하는 아들의 눈빛을 알아채셨는지, 아버지께서는 시계를 풀어 아들 왼쪽 손목에 채워 주셨습니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을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따끈따끈 하더군요.

아마도 그 겨울날의 경험이 없었다면 제가 이 지경(?)까지 안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 해 봅니다. 너무 과한 표현인가요?

왼쪽이 그 문제의 시계입니다. 아니 대체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시간은 참 빠르더군요. 어느 순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이제 아버지처럼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기념으로 세이코(이 시국에)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이후 이 쪽 분야에 정신없이 빠져들면서 대충 13~14개 정도의 시계를 모아들였고, 어느덧 의젓한 덕후가 되어 버렸네요.

아버지가 시계 취미를 정리하시면서,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차시던 시계들도 제가 전부 인수했어요. 이제는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들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시계를 차고 다니시더라도 딱히 시간이나 날짜를 안 맞추는 스타일이셨는데, 웃긴 건 저도 똑같이 시간, 날짜 다 안 맞추고 다니고 있네요. 확실히 유전자의 힘이라는 게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시간과 날짜는 핸드폰으로 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추가로 시계 교육을 받는 동안, 별도로 무브먼트와 케이스 등등… 시계 조립을 위한 재료들을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부품들이 바다 건너 날아오면, 약 두세개 정도의 시계를 당장 조립할 준비가 끝날 예정인데요. 이것들로 처음 만드는 시계는 아버지한테 선물해 볼 예정입니다. 오래 전 시계 생활을 접으신 아버지한테 다시금 열정의 불꽃을 활활 피워 드릴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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